진화심리학에 대해서

from 소요유 2007. 10. 3. 13:11


전에 '마음의 기원'을 읽고 정리를 한 번 한다는게 늦어졌다. 이것 저것 할 이야기도 많고 머리 속에서 정리도 안되고 혼란스러워서 적기가 꺼려졌던 것이다. 그래도 이러다가 영원히 못쓰겠다 싶어 한번 써 보련다;

진화심리학은 진화론과 인지심리학의 결합이다. 먼저 인지심리학은 인간의 행동이 '마음'으로부터 비롯된다고 보는 학문이다. 행동은 마음으로부터 비롯되는 것이 당연하지 않느냐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이것은 인간의 행동이 외부의 자극에 의해 당위적으로 이뤄진다는 행동심리학에 반기를 들고 나타난 것이다. 행동주의에 따르면 옷을 껴입는 것은 추워서이고, 밥을 먹는 것은 배고파서이고, 우산을 쓰는 것은 비가 오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인지심리학이 출현하면서 이 이론은 쇠락하기 시작했는데, 이때 주요한 개념이 '신념'과 '욕구'이다. 이를테면 먹구름을 보고 우산을 준비하는 것은 신념에 따른 것이며, 또한 비가 올 때 그냥 맞지 않고 우산으로 막는 것은 욕구에 따른 것이라는 것이다. 같은 자극에 대해 동일한 행동이 산출되지 않음을 근거로 두각을 드러내기 시작한 인지심리학은 인간의 사고와 행동이 일련의 연산으로 정보를 처리하는 컴퓨터와 흡사하다고 한다. 그러니까 자극에 대해 마음은 복잡한 계산을 거쳐 결론(행동)을 도출해 낸다는 것이다.
그런데 마음은 여러 프로그램들이 서로 얽히고 섥혀 있다. 예컨대 수면에 대한 욕구와 식욕이 상충할 경우라든가, 여러 이성들 중 한 명을 택해야 하는 상황 같은 경우 마음의 여러 프로그램들은 서로 상충하게 되는 것이다. 이때 진화생물학이 등장하게 된다. 진화생물학은 마음의 프로그램들이 어떻게 해서 생겨나고 발전하게 되었는지, 그리고 마음의 프로그램들이 서로 얽힐때 그것을 어떻게 조율할 것인지에 대한 해답을 제시한다. 그것은 바로 '유전자'이다. 진화심리학에 따르면 인간의 행동들은 유전자의 부름, 유전자의 요구에 따라 결정된다. 인간 삶의 목적은 개체의 유전자를 보다 많이, 보다 강하게 후세에 물려주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삶의 다양한 문제에 대해서 가장 합리적(유전자적)으로 대처할 수 있어야 하고, 그 판단 기준들은 '적응'을 통해 유전자에 각인되어진다.
이에 따라 인간의 마음에는 '포식 동물 피하기', '적절한 음식 먹기', '동맹 및 친구 맺기', '어린이와 친척에게 도움 제공하기', 다른 사람들의 마음 읽기', '다른 사람들과의 의사소통', '배우자 선택' 같은 프로그램들이 각인되어지고, 그것은 '모듈'이라고 일컬어진다. 이런 각각의 모듈들에 의해 인간의 유전자는 잘 보전되고, 더 우량화되어 후세로 전달된다는 것이다. 이런 모듈들은 이미 유명하다. 배우자 선택에 있어 대칭적인 신체를 선호한다거나 허리-엉덩이 비율이 0.7인 여성을 선호하고 경제력이 높은 남성을 선호한다는 것이나 과거로부터 내려온 지방과 당분에 대한 선호 때문에 자원이 풍부한 현대에 비만이 증가하고 있다는 것이나 갑작스러운 물체의 출현에 공포감을 느끼는 것 따위다.

꽤나 명쾌하지 않은가. 그렇지만 이해되지 않는 것들도 많다. 마음의 기원에 나오는 말이다.

심리적 메커니즘의 출력물이 특정한 적응 관련 문제를 해결한다는 의미는, 그 결과가 언제나 긍정적이거나 성공적이라는 뜻은 아니다. 당신의 위협에도 불구하고 경쟁자가 단념하지 않을 수도 있고, 당신이 질투를 보임에도 불구하고 파트너가 경쟁자와 놀아날 수도 있다. 핵심은 심리적 메커니즘이 언제나 성공적인 해결책을 내놓는다는 것이 아니라, 진화된 환경 속에서 평균적으로 다른 경쟁 전략보다 훌륭하게 적응 관련 문제를 해결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과연 현대에 와서, 혹은 미래에 있어서도 이 진화심리론적 메커니즘이 평균적으로 훌륭한 해결책을 내놓을 수 있을까? 진화는 연기적이다. 진화는 진화적 적응의 환경(EEA: Environment of Evolutionary Adaptation)에 대해 한두 세대간 노출된다고 이뤄지지 않는다고 그들이 말하고 있다. 따라서 급변하는 사회 환경에 진화가 해답을 내놓으리라고는 생각할 수 없지 않은가. 앞서도 언급했듯이 과거 지방은 희소성이 있고 칼로리 보충에 결정적 도움을 주었기 때문에 우리 조상들은 지방에 대한 선호를 가지게 되었지만 현대에 있어서 지방은 희소성을 잃었음에도 폐기되지 않은 '지방에 대한 선호' 메커니즘 때문에 여러 질병의 위협에 노출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진화가 생존을 위협하고 있는 것이다.

진화는 최종적으로 진화를 외면하도록 진화한 것은 아닐까? 이것은 유전자의 궁극적 목표(유전자의 보존과 계승)를 외면하면서 그 목표를 위한 부수적 욕망들은 버리지 않음을 의미한다. 우리는 피임법의 개발에 의해 자식을 낳으려 하지 않으면서도 섹스를 한다. 이것은 아이를 원하지 않는 불륜 관계나, 불임 부부가 이혼하지 않는 정황, 동성애 같은 것들로 증명이 가능하다. 유전자의 궁극적 요구를 무시하면서까지 섹스를 거부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나는 그것이 즐겁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앞으로의 진화는 이런 식이 되지 않을까? 그러면 진화심리학은 궁극적으로는 '과거인(人) 진화심리학'으로 남게 되지는 않을까? 동물을 진화생물학으로 파악하듯이 말이다. 진화심리학이 현재, 나아가 미래에도 그 타당성을 부여받기 위해서는 끝도없는 가설들과 끝도 없는 범위의 확장이 필요하다. 그럴 경우에 우리는 질문할 수 있는 것이다. 그게 진화심리학인가?

마음의 기원 304페이지에 친부모에 의해 살해될 위험과 아동의 연령, 아동이 친족이 아닌 사람에 의해 살해될 위험과 연령에 대한 문제가 나온다. 전자에 대해선 어릴수록 사망률이 높고, 후자에 대해선 연령이 높을수록 사망률이 높다. 이것을 두고 진화론자들은 친부모가 17세 이상 자녀를 살해하지 않는 이유를 단순히 자식의 힘의 증가에서 찾지 않고, 번식의 가능성을 염두에 두기 때문으로 해석한다. 17세 이상이 되면 그가 생식을 통해 부모의 유전자를 후세에 전달할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것이다. 그러나 만약, 아이들이 타인을 살해한 비율을 여기에 첨가해 보면 어떨까? 그러니까 아이들의 연령에 따라 타인과 적대적 관계를 가질 비율을 옆에 놓고 다시 생각한다면? 그 비율과 타인에게 살해당할 비율이 일치하지는 않을까? 그렇게 되면 당연히 자식의 힘의 증가에 따라 부모의 자식에 대한 살해의 용이성이 낮아진다고 볼 수 있지 않은가. 여기에 번식의 가능성이 끼어들 여지가 있는가?

339페이지엔 진화론자들의 결정적 오류가 발견된다. 집안에 1살, 10살, 18살, 75살의 친족들이 있다. 불이 났는데 한 명만 구할 수 있다. 설문조사에 의해 이 경우에 1살, 10살, 18살, 75살의 순서로 우선순위가 정해졌다. 진화론자들은 번식력이 제일 강한 18살이 먼저 구조되지 않는 이유에 대해 의문을 품게 된다. 그들은 이 수수께끼를 풀어야 한다고 말하지만, 이게 유전자 개념으로 풀리는 일은 요원해 보인다. 유전자 보다는 문명, 문화로 접근해 보는 것이 어떨까? 간단하게 '인간은 누구나 죽는다'라는 명제로 접근해 보는 것은 어떨까. 인간은 유전자의 단순 맹목적인 요구 말고도 인간 세계에 축적된 문명, 문화적 힘을 동시에 받고 있다. 인간은 누구나 죽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에 1살의 아기를 구하는 것이 75살의 노인을 구하는 것보다 이익인 것이 아닐까? 이를테면 우리는 "저런 꽃다운 나이에 죽다니"라는 말을 쉽게 하지 않는가.

진화심리학의 한계는 '마음의 기원' 여기저기에서 나타난다. 브로콜리는 쓴 맛에 대한 유전자적 거부 때문에 아기들이 싫어한다고 하면서도 향신료는 식품의 부패를 막아 주기 때문에 선호한다고 설명하는 것은 전형적인 이중잣대가 아닌가? 아기가 향신료를 좋아하는가? 성인이 브로콜리를 선호하지 않는가? 왜 브로콜리에 있어서는 유전자적 잣대를, 향신료에 대해서는 문화적 잣대를 갖다 대는가? 왜 문화를 유전자에 포획시키는가? 알콜 선호에 대해서도 이것이 익은 과일을 선호하는 적응 메커니즘의 발전으로 해석하는데, 그럼 술을 전혀 마셔 보지 않은 사람이나 아기들이 술을 선호하는가? 진화론적 관점에서 술이 생존에 도움이 되는가? 그럼 마약의 경우엔 어떤 적응적 메커니즘이 발달한 것인가? 어디까지나 문화적 효과일 뿐인 것을 왜 굳이 유전자로 해석하려는 것인지 이해가 안된다.

386페이지의 '속임수의 문제'에 대해 살펴 보자.

1. 책상 위에 네 개의 카드가 놓여 있다. 카드 마다 한 면에는 문자가, 다른 면에는 숫자가 쓰여져 있는데 당신은 이 중 한쪽 면만을 볼 수 있다. 이제 다음과 같은 규칙을 검증하려면 어떤 카드를 뒤집어 봐야 할까? "카드 한쪽면에 모음이 있으면 다른 쪽 면에는 짝수가 있다" 이 규칙의 참 거짓을증명하기 위하여 뒤집어 봐야 하는 카드만 골라 보아라.
1번 카드: a
2번 카드: b
3번 카드: 2
4번 카드: 3

2. "어떤 사람이 술을 마시면 그는 20세 이상의 성년이어야 한다."라는 규칙을검증하여야 한다. 당신은 임무를 완수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네 명의 사람이 미성년인지를 확인해야 한다.
1번 사람은 맥주를 마시고
2번 사람은 소다수를 마시고 있다.
3번 사람은 25세이고
4번 사람은 16세이다.
이때 누구를 확인해야 할까?

이 두 문제는 사실 동일한 난이도를 가지고 있음에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2번 문제를 손쉽게 푸는데, 이것은 바로 '속임수에 속지 않는 메커니즘'에 따른 것이라는 주장이다. 언뜻 보면 맞는 말 같기도 하다. 그런데 만약 1번과 같은 문제에 익숙해져 있는 사람이라면? 2번 문제는 단순히 생활 속에서 흔히 접하는 문제이기에 쉽게 느껴지는 것이라면? 나부터도 1번 문제가 2번 문제에 비해 그리 어려운지 모르겠다. 많은 다른 동물들이 그렇듯이 인간도 단체 생활을 통해 포식자로부터의 위협에서 벗어났고 생산물을 좀더 효율적으로 소비(예컨대동물을 사냥했을 때 무리가 없다면 다 먹지 못하고 썩는 일이 발생하고, 이것은 비효율적이다)하게 되었는데, 이때 노력 없이 무리의 이익만 공유하는 '무임승차자'를 가려낼 필요가 있어서 발동하게 되는 것이 '속임수에 속지 않는 메커니즘'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과연 저 두 문제가 그 메커니즘을 증명할 수 있을까?

순결성은 애초에 부성 확실성의 보장 때문에 중요시되었다고 한다. 어머니의 경우 자식에 대해서 자신의 자식임을 100퍼센트 확신할 수 있는 반면 아버지의 경우에는 그렇지가 않다. 따라서 그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순결한 여성을 파트너로 찾게 된다는 것이다. 순결한 여성은 결혼 이후에도 순결할 확률이 높고, 따라서 부성 확실성을 보장받을 확률이 높다는 것이다. 그러나 피임의 보편화로 인해 순결성의 가치는 현저히 떨어지고 있는 추세다. 그렇다면 순결성에의 추구는 유전자적 요구가 아니라는 것인가? 이 위기를 진화론자들은 '성차'로 극복하려 하는데, 순결성의 가치는 현저히 하락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녀의 성차(남자가 더 순결성에 가치를 두는)는 존재한다는 것이다. 아, 과연 이것을 진화나 적응의 지속성으로 파악해야 할까? 책 전반에 걸쳐 진화론적 위기에 대해 왜 '성차에는 변화가 없다.'로 얼버무리는가?

진화심리학이 웃긴 점은, 인간 사회의 모든 일들이 진화심리학으로 설명되어야 한다고 믿는 점이다. 나는 여기서 그들의 반대편에 서 있다고 여겨지는 '창조론'의 냄새를 맡는다. 이것 저것 다 진화고 잘 이해 안되는건 부수효과에, 무선효과고, 성차고, 언젠간 밝혀질 유전자적 원리라니. 모든 것이 창조주의 뜻이고 설명 안되는건 사탄의 작용에, 지상의 법과 다른 천상의 법이라는 창조론과 비슷하지 않은가? 자살, 동성애, 트랜스젠더, 종교, 예술, 입양, 2세 생산을 배제한 불륜같은 문제들이 유전자로 해석될 수 없음을 인식해야만 한다. 자살을 '포괄적 적응 이론'으로 풀려고 하는 모습은 애처롭기까지 하다. '포괄적 적응 이론'이란, 자신이 갖고 있는 유전자 조합을 100으로 봤을때 타인에 대해 내 유전자가 몇퍼센트가 공유되고 있는가를 따지는 이론이다. 설명하자면 내 자식은 나와 내 배우자의 유전자가 각각 50퍼센트씩 점유하므로 나와 50의 관계가 있고, 손자의 경우엔 25의 관계가 있다는 식이다. 이 이론에 입각해 자살자의 경우 자신이 유전자를 유전할 가망이 없어 보일 때, 자살을 통해 내 유전자를 몇퍼센트라도 가지고 있는 친족에게 부담이 되지 않게 하고, 따라서 그들의 유전 가능성을 높인다는 것이다. 세상에... 그럼 고아의 자살은? 언뜻 생각하기에도 친족이 적은 사람의 자살의 가능성이 높은 것 같지 않은가? 나는 진화심리학이 인간의 심리를 이해하는데 도움을 준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것이 다가 아님도 인정해야 한다. 앞서 언급한 진화심리학적 난제들은 오히려 프로이트의 삶의 충동(유전자의 욕구를 포함한 개념이 될 것이다)과 죽음 충동에 의해서나, 혹은 라캉식 최초 결여를 채우기 위한 환유적 욕망 연쇄, 혹은 니체적 권력의지(앞의 것들과 배치되긴 하지만) 같은 것들이 더 쉬운 설명을 제공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라캉식 상징계로 인류가 돌입하면서 유전자 말고도 상징계 내에서의 추동 에너지가 추가됐다고도 볼 수 있지 않을까? 진화심리학자들이 부수효과라고 말하는 문자나 언어가 단순히 부수효과를 넘어서서 유전자의 적응 궤도를 벗어났다면 어떡하겠는가. 라캉이 얘기하듯 그 언어에 의해 상징계가 구성되고 있다면 과연 그 세계가 유전자로만 해석이 되겠느냐는 말이다. 라캉처럼 언어로 인해 주체가 탄생하는 것이라면, 그 주체는 유전자 뿐만 아니라 상징계적인 추동 에너지까지 떠안은 주체가 될 가능성이 높지 않을까? 그래도 진화심리학적 관점에서 재구성을 해본다면, 말그대로 유전자적인 유전자 외에도 유전자 외적인, 이를테면 정신적인 유전자라고 할만한 것이 새로 생겨난 것은 아닐까? 그러니까 진화심리학이 비문명인, 유전자에 대한 계보학, 해체라면 라캉 이론은 상징계에 대한 계보학, 해체이고 그 둘을 통합하는 것은 어쩌면 니체의 계보학이 아닐까? 문명 전단계의 인류와 문명인의 삶과 심리를 파헤쳐 그 둘을 통합하고 그들 사이에 작용하고 있는 힘과 가치들을 해체해 나가는 과정. 그것이 니체가 아닐까? 질러 놓고 보니 말을 잇지 못하겠다. 공부 좀 더 하고 체계화시켜 보든지 폐기하든지 해야겠다. 뭐 어쨌든, 지금으로서의 내 결론은 이렇다는 것이다. 완전 용두사미네. 안구에 습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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