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랜짓

from 소요유 2023. 10. 12. 22:34

 

올해의 발견 둘: 하마구치 류스케, 크리스티안 페촐트.

하마구치 류스케 작품은 '드라이브 마이 카', '우연과 상상'을, 페촐트 작품은 '트랜짓', '피닉스', '바바라'를 봤다.

아직도 볼 작품들이 많이 남아 있어서 행복하다.

피닉스를 먼저 보고 (나의) 올해의 영화라고 생각했었는데, 트랜짓을 보고나니 바로 바뀌었다.

문학적이고 고전적이고 품위 있고 매혹적이다. 페촐트 작품 모두가 그렇기도 하지만.

 

 

 

"누가 먼저 잊을까요? 떠난 사람일까요, 남겨진 사람일까요?"

게오르그는 아내가 기억나지 않는다고 말한다. 대답을 얼버무려야 할 상황이긴 하지만 자신이 파악한 정황상 마리는 스스로 떠났고, 떠난 사람이 잊지 못할 것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마리는 떠났고, 마르세이유에서 '잊지 못하는' 유령이 되었다.

게오르그는 떠나지 않았지만 역시 마르세이유에서 '잊지 못하는' 유령이 되었다.

다시, 바이델은 남은 자인 동시에 떠난 자가 되었다.

다시, 게오르그는 떠나지 않았지만 바이델로서의 그는 떠난 자이므로, 역시 마르세이유에서 '잊지 못하는' 유령이 되었다.

떠나는 자는 죄책감을 가지고 있다. 죄책감을 가진 자는 잊지 못하고, 결국 떠나지 못한다.

그런데 남겨진 자에게는 죄책감이 없을까. 그는 과연 결백할까. 혹시 자신의 죄 때문에 남겨진 것은 아닐까.

 

 

 

파국으로 치달은 관계에서 과연 누가 죄인이고 누가 떠난 자일까.

그 모호한 정체성을 가진 자들이 1940년대의 마르세이유를 배회하고 있다.

바이델은 없지만 마리의 사랑은 지속된다. 그리고 마리는 없지만 그 정체불명의 사랑은 다시 지속된다. 

그렇게 그들의 유령은 2020년의 마르세이유를 여전히 배회하고 있다.

어떻게 보면 완성된 사랑보다 깨어지고 버려진 사랑이 더 오래 지속되는 것은 아닐까 싶기도 하다.

 

 

 

가끔 추억이 깃든 장소를 구글맵으로 다시 찾아보곤 한다.

수년에서 십수 년이 지난 거리들을 다시 걷고 있는 듯한 느낌이 좋아서다.

아니, 내가 떠나온 자라서, 떠나지 못한 자라서 그런건 아닐까?

 

https://youtu.be/0Q7w7gk1JhQ?si=Y6taYgs0u4q0LJp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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