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한 입술 - 김성진

from 소요유 2007. 12. 4. 2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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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에 내 자리에서 근무하던 쌤 앞으로 갤러리 현대의 전시 안내물이 왔다. 위에서 네 번째 그림이 뒷쪽에 보였는데 포스가 장난 아니었던 관계로 좀 찾아 보았다. 보러 가고 싶다. 엄청나 엄청나+_+




-갤러리 현대의 전시소개

거대한 입술. 김성진은 인간의 입술을 크게 확대해서 그렸다. 특정인의 얼굴은 부재하고 배제된 체 오로지 입술이 위치한 부위만이 거대한 풍경을 이루고 있는 그림이다. 눈길을 잡아 끄는 이 매혹적인 소재는 입술이란 친근한 소재를 더없이 관능적으로 보여주다가도 이내 무척이나 낯설게 제시한다. 자세히 보면 징그러울 정도로 디테일하게 묘사된 그 부분을 들여다보노라면 흡사 의학도서에 실린 도판을 보는 듯도 하다. 병원에서 지독하게 까발려진 인체의 내부를 확인하고 앉아있을 때의 체험이 생각난다. 근작은 단독으로 설정한 입술이 좀더 극적인 상황성을 드러내고 있고 모종의 내러티브, 장면연출을 만들어내는 편이다. 단독으로 설정된 입술과 남녀가 키스를 하는 장면이 주를 이루지만 둘 다 무언가의 매개에 힘입어 입술의 관능성과 성애적 분위기를 고조하는 편이다. 키스란 고대 이전부터 존재해온 의사소통방식이다. 그러니까 키스와 성행위는 언어가 생기기 이전부터 있었다. 두 사람이 입을 바짝 대고 혀를 상대의 입에 집어넣어 교감하는 것은 그 입이 영적인 기운이 나오는 곳이기 때문에, 입맞춤은 서로의 영혼이 깊게 결합하는 것을 상징해왔다. 매우 빨간 입술과 하얀 치아, 양귀비꽃이나 뱀과 같은 혓바닥이 보는 이의 시선을 막아 선다. 동양에서는 미인의 조건으로 ‘단순호치’(丹脣晧齒)를 꼽았는데 이 그림은 그 두 개의 극명한 대비를 도발적으로 보여주는 편이다. 그래서 장면은 일상적이면서도 보편적인 포르노이미지와 겹쳐진다. 동시에 입술로 이루어진 풍경화이자 입술로 쓰여진 문장, 수화가 아닌 ‘순화’(脣話)인 셈이다. 이 입술은 그림의 소재이자 주제이고 이미지이자 상징적 언어로서 기능한다.

인간이 거느린 신체 가운데서도 가장 바쁜 입은 ‘얼굴의 싸움터’이다. 물고 핥고 빨고 맛보고 씹고 삼키고 말하고 욕하고 저주하고 신음하고 쾌락의 교성을 지른다. 하품과 기침을 하고 침을 뱉고 노래를 부르고 미소 짓고 웃고 울고 키스하고 담배를 피우고 술을 마신다. 입은 몸 속과 연결되어 있고 입을 벌리면 내장의 온기와 소음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신경종말을 가장 풍부하게 갖춘 부위라 그만큼 예민하다. 그래서 입술은 단연 촉각의 기관이다. 음식물처리와 의사소통의 기관이지만 그것보다는 미용의 초점이기도 하다. 성호르몬이 분비되는 사춘기에 이르면 소녀들의 입술은 붉어지고 도톰해진다. 가슴과 엉덩이 주위로 점점 축적되는 지방과 더불어 다산성을 상징하는 하나의 시각적 신호가 그 입술에 자리한다. 따라서 여자의 입술은 일생 동안 성적 광고의 주요 터전이다. 따라서 실리콘이나 콜라겐이나 지방이식 등을 통해서라도 도톰한 입술을 유지하려 한다. 화장을 하지 않는 여성도 립스틱만은 바른다. 할머니들도 외출할 때면 어김없이 붉은 색 루즈를 바른다. 주름이 얼굴을 덮어도 자신이 여성임을 증거하는 마지막 수단, 거점인 입술은 포기하지 않으신다. 여성의 삶이 다하는 날은 입술에서 립스틱이 사라진 날이다. 립스틱을 칠한 마릴린 먼로의 입술만을 연속적으로 구성한 워홀은 여자에게 입술과 립스틱이 어떤 것인지를 예리하게 간파한 작가다.

김성진의 그림 속 배경은 하얗게 지워지고 입술만을 보여준다. .타액과 땀, 물기, 투명한 막 같은 것으로 흥건하게 적셔진 몸의 한 부위에 집중되어있다. 코와 입술에 고드름처럼 맺힌 물기, 물속에 잠겼다 떠오르는 듯한 입술, 서로의 입술과 혀의 질감과 촉감, 침을 교환하는 키스 장면 등은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한 에로티시즘을 보여준다. 남자의 혀와 여자의 입술은 각자의 부푼 성기를 연상시키고 그 혀들의 교호는 탐닉과 삽입을 대체하면서 실재 성행위를 시뮬레이션 한다. 누군가의 입 속으로 들어가고자 하는 것은 그 육체 안으로 삽입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래서 누군가와 키스를 한다는 것은 자기 몸과 마음을 기꺼이 허용하겠다는 제스처다. 따라서 그림 속 입술은 한결같이 열려있다. 그 벌어짐은 무언가를 받아들이기 위한 공간을 마련해준다. 살짝 벌어진 입술 사이로 단단하고 날카로운 혀와 침으로 적셔진 이빨이 보이고 누군가의 입술을 맞대고 있거나 혀와 입술로 식물의 성기인 꽃과 접촉하는 있는 장면들이다. 여성의 입술이 주를 이루고 있는데 그 입술은 한결같이 립스틱에 의해 붉게 장식되어 있다. 화장에 의해 아름답게 보이는 입술이지만 가까이 다가간 시선에 의해 확대된 입술과 입술 주변, 혀 등은 아름답다기보다는 다소 공포스러울 정도로 징그러움을 안기기도 한다. 모순적인 이미지인 셈이다.

혀가 과장되게 위치해있고 이를 통해 우리가 늘상 보고 접하는 누군가의 입술이미지이지만 무척 생소하고 다소 괴이하거나 묘한 느낌을 받는다. 인간의 몸을 이루는 신체의 어느 한 부위가 거대하게 부풀어 올라 눈앞에 자리할 때 순간 그것으로부터 피하고 싶다. 내 몸이 저렇게 생겼다는 사실에 곤혹스러운 것이다. 극대화된 입술은 관능성, 성적인 의미를 강하게 부추키기도 하지만 동시에 이처럼 혐오스럽기도 하다. 사랑하는 이와의 키스는 달콤하지만 그렇지 않은 자와의 입맞춤은 죽기 보디 싫은 일이다. 창녀들은 성기를 내주지만 입술만큼은 허용하지 않으려 한다. 거대한 입술을 보는 순간 관람자들은 그것이 누구나 달고 있는 얼굴의 한 소중한 기관이라는 사실을 잠시 망각한 체 혐오스럽거나 괴기스럽다는 느낌을 갖는다. 그와 동시에 입술의 생김새를 다시 확인하게 된다. 알다시피 입술은 드러난 점막이다. 구조적으로 인간의 안과 밖을 동시에 볼 수 있는 신체의 일부인 것이다. 입술은 인간의 욕망과 가식, 위선을 가지는 상징성을 지닌다. 입을 통해 말을 함으로써 내면의 자아와 밖으로 표출되는 자아가 동시에 열려있다. ‘내면과 외면을 연결하는 자아의 통로’인 셈이다. 작가는 입술이 지닌 그 독특한 성격에 주목, 가려진 인간의 이중성을 입술이라는 기관을 매개로 말하고 싶었다고 한다. 그러한 이중성이 이 입술그림에 스며들어있다.

이른바 포토리얼리즘 기법에 입각한 이 그림은 사진과 회화의 사이에서 진동한다. 작가는 모델의 입술 부근을 사진 촬영한 후 이를 기본으로 해서 그 위에 자신의 상상력을 얹혀 입술풍경을 만들었다. 여러 모델의 다양한 입술 모양을 렌즈 가득히 클로즈 업 했는데 극대화된 이 대상은 작가 내면의 표현으로 감상하는 이와 작가를 연결하는 기호가 된다. 실감나게 그려진 입술의 형태(이미지)는 작가에게 일종의 상징이자 시각 언어다. 작가는 화면상에 주제와 상징의 징후가 되는 극대화된 입술 이미지만을 나타내고 나머지는 생략하여 여백으로 남겨두었다. 이는 시각을 통해서 얻는 형에 머물지 말고 빈 공간을 통해 상상력을 통한 의미를 드러내고자 하는 의도다. 여기서 사진은 작가에 의해 선택된 하나의 이미지다. 그는 사진을 이용하되 주관적인 감성에 의해 사진이 가진 한계를 극복하고자 한다. 자연광 아래서 촬영한 사진을 이용해 사진을 전사하되 묘사 단계에서 작가가 인식하고 있는 자연광에 의한 색채를 구사하고 있다. 아울러 사진에서 보여지는 것 이상으로 인지되는 피부의 감각을 정밀하게 표현한다. 그래서 만져질 듯한, 촉각적인 피부의 느낌을 보여준다. 그의 그림은 시각적인 동시에 촉각적이다. 그것은 사진의 표피성을 넘어서려는 시도다. 김성진의 이 입술그림은 최근의 몸의 담론, 성과 욕망, 인간의 이중성이라는 담론과 최근 극 사실주의, 사진과 회화, 팝적인 이미지 등과 관련된 상당히 풍성한 의미를 지니고 매혹적으로, 기이하게 자리하고 있다.
 
박영택 (미술평론, 경기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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