긍정

from 소요유 2007. 10. 9. 16:53
한 할아버지께 놓았던 침을 뽑고 밖으로 나갔다. 공기는 서늘하고 햇살은 따뜻하였으며 바람은 불감기류와 쾌감기류 사이를 왔다 갔다 하며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고 있었다. 나는 더 이상 어깨 통증을 느끼지 않았고, 이것은 있어도 없는 것이요 없으면 없음으로서 없는 것이었다. 니체의 건강이 질병으로부터 획득되었듯이 나의 건강도 어깨 통증으로부터 도래하였다. 앞으로 나아가니 발과 샌들 사이로 바람이 막을 이루며 흘러 나갔고 적당히 길어진 머리카락도 이리저리 뭉쳤다 흩어졌다. 보건소 부지 끝에 서니 앞에 데이지 꽃들이 단정하게 서 있고 파란 잔디들은 태양 광선을 향해 온 몸이 촉수가 되어 발버둥치고 있었다. 멀리 초등학교 운동장에선 조그만 아이들이 재잘대며 뭉쳤다 흩어졌다를 반복했고 고개를 돌려 보건소를 바라보니 침 맞고 주사 맞고 돌아 가시는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보였다. 문득 그들에게서도 지고의 건강함이 느껴졌고, 그들에게도 똑같이 햇살과 바람이 일고 있었으며, 그들 또한 소리 없이 재잘거리고 있었다. 모든 것이 충만했고 옆 공사장의 포크레인도, 초등학교 옆을 지나가던 승용차들도 잔디와 데이지와 바람과 태양처럼 충만함의 일부로 포획되어 갔다. 나는 그 순간 초등학교 운동장에 폭탄이 떨어지더라도, 보건소를 나가는 노인이 급사하더라도, 내 등을 누군가가 칼로 찌르더라도, 세계를 긍정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세계는 무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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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ona apple - across the universe




원래 올리고 싶었던 곡: 2007/10/11 - [영상실] - flaming lips - do you realiz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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