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로니카의 이중생활

from 소요유 2007. 9. 30. 0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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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bigniew preisner - les marionnettes(베로니카의 이중생활 ost 中)


베로니카의 이중생활을 오랜만에 다시 봤다. 특별판이라 안에 이렌 야곱 인터뷰랑 크쥐시토프 키에슬롭스키 단편들도 몇 개 있고 무엇보다 ost 시디도 들어 있다. 이 영화 정말 정말 정말 좋아한다. 이렌 야곱 완전 이상형+_+

인간은 어떻게 죽지 않을까?
산다는 것은 무엇일까. 살아 있는 인간은 호흡하고 먹고 싸고 자고 일어난다. 그것은 무엇일까.
'마음의 기원'에 보면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이스라엘 키부츠에서 모든 사람이 평등한 공동체를 실험적으로 만들어 보았다는 것이다. 거기선 모든 남성과 여성이 동등하게 일을 하고, 모든 결정은 공동체적으로 내려지며, 모든 아이들은 집단에 의해 길러진다. 그런데 결국엔 부모들이 자신의 자식을 개별적으로 기르고 싶어 했고, 공동체는 붕괴했다고 한다.
자신의 자식이 다른 사람의 아이들로부터 개별화되기를 원했다는 것이다. 그것은 나아가 자신이 사회로부터 개별화되기를 원하는 것과 상응한다. 자진해서 평등한 삶, 공동체적인 삶 속으로 들어간 사람들이 그것을 견디지 못하고 뛰쳐 나온 것이다. 그러니까 나는, 인간이 차이로 말미암아 생존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폴란드의 베로니카는 프랑스에서 여행 온 베로니끄를 목격한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공연의 클라이막스에서 노래하다가 심장이 멎어 죽고 만다. 화면은 프랑스의 베로니끄에게로 전환되고, 베로니끄는 오르가즘에 도달해 있다.
인간은 도플갱어를 보면 죽게 된다고 한다. 흔히 도플갱어는 나 자신의 분열, 나의 해체를 의미하기에 죽음과 맞닿아 있다고 해석된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 도플갱어는 분열과 해체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분열과 해체의 반대편에 서 있다. 분열과 해체의 원천적 봉쇄를 의미한다. 도플갱어는 나의 극복, 나의 생성을 무의미하게 한다. 나의 의미를 지워 버린다.
삶이란 무엇일까? 호흡하고 먹고 싸고 자고 일어나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아마도 매일 매순간 새로 태어남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까? 인간은 차이로 말미암아 생존한다. 내가 다음 순간에도 존재하기 위해서는 현재의 나와도 차별화되어야 한다. 그것이 곧 생존의 의미이다. 도플갱어는 상승의 의지, 변화 가능성을 부정한다. 그것이 다 부질없다고 말한다. 나의 상승 의지, 권력 의지는 타자에 대한 극복이 아니다. 그것은 나 자신의 극복, 나로부터의 방랑을 의미한다.

인간은 도플갱어를 목격한다고 죽는 것이 아니다.
인간은 자신으로부터 달아날 수 없을 때 죽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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