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이 서거하신 다음날 서울 가는 버스 안에서 한 아줌마에게 들었던 말,

"사람이 힘든 일을 많이 안겪어봐서 그래. 그래도 살았어야지. 쯧쯔."

김대중 대통령이 서거하신 그 날 제사가 있어서 들른 5촌 당숙이 다짜고짜 내게 비꼬면서 한 말,

"올라가면 대중이 슨상님 조문 가야지?"

김대중 대통령이 서거하신 다음 날, 그러니까 오늘 택시 아저씨한테 들은 말,

"5.18은 김대중이 일으킨 폭동이다입니꺼. 내가 그때 광주에 있어서 다 봤다캐도예."

서산으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나는 너무 피곤해졌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그 말이 떠올랐다.

"마음이 피곤해 세상을 사랑하고 싶지 않다."

장국영의 유언이다. 당시에는 마음에 썩 와닿지 않았는데, 아까 내가 딱 그런 마음이었다. 그런 지점이 있을 것 같다. 대체 무엇을 위해 세상을 사랑해야 하는 걸까..

동굴 밖을 나가 빛을 본 사람은 그 빛을 잊을 수 없다. 산타클로스의 부재를 알게 된 자는 그것을 모르던 시절로 돌아갈 수 없다. 직립보행을 시작해 손의 자유를 얻게 된 자는 사족보행으로 회귀할 수 없다. 니체에 의하면 강하고 건강한 자는 새로운 지평이 열리는 순간 과거를 망각하기 시작한다. 그래서 강한 자는 잊는 자이다. 바디우는 인간이 사멸적 존재인 동물로부터 '불사의 존재'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사건'에 대한 충실함, 배반하지 않음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들이 발견하고 그들이 '진리화'하려 했던 가치들은 이 세상에 도래하지 않았던 것들이다. 그것은 동굴밖의 빛이요, 산타클로스의 부재요, 직립보행에 수반된 손의 자유였다.

그런데 강하고 건강하여 망각한 자들, 불사의 인간이 되기 위해 진리에 충실했던 자들이 고작 동굴 밖을 한 번도 나가보지 않은 자들에게 미치광이 취급을 받게될 뿐이라면, 과연 우리는 세상을 사랑해야 하는 걸까? 이렇게 마음이 피곤하고 힘겨운데도 우리는 세상을 사랑해야 하는 걸까?

그래도, 그렇다.

그래도, 사랑해라. 우리는 지금 이 세상만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니까. 우리가 사랑하고 싶지 않은 세상이 여기에 존재한다는 바로 그 사실이 우리의 존재 이유를 설명해 주고, 우리가 불사의 인간으로 거듭날 근거를 제공한다. 세상이 가변적이라는 그 단 하나의 사실만으로도 세상은 충분히 사랑할만한 것이다. 그렇게 두 분은 사랑하다 사랑하다, 불사의 별이 되었을 게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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