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톱

from 분만실 2007. 11. 14. 21:29


           손톱


1.
오늘 밤도 손톱을 깎는다.

사실인즉, 단단하게 덩어리진 세계는 흐를 듯 무른 내게 그 자체로 고통이다. 밀에서 소로 만상이 흐르듯 세계는 육체의 말단으로 엄습해 온다. 그 말단이란 것이 첨예한 까닭에 일단 고지를 점한 고통은 압력이 높아 몸의 내부로 터져 들어가듯 분사되고, 이어 나의 곳곳을 비집어 유영하리라. 고로 말단은 자라야 한다. 자라서 소비되어야 한다. 바닥을 기는 잡초에까지 말단엔 생장점이 필요한 법이다.

껍데기를 스스로 깨 부순 달팽이는 그만 새로운 껍데기에 다시 갇히고 만다.
내게 태양은 곧 칼이요 탄환이라.
태양에 노출되는 꿈을 꾼다.
대지에 점액으로 흘러 내려 끝내 허연 흔적으로 남는.
꿈을 깬 나는 머리를 길러 내어 태양을 차단한다.

골방에 박혀 자위.
모든 구멍은 일상적으로 긴장한다.
대체로 삽입은 신음을 수반하지 않던가.
그렇게 나의 자위는 역설적으로 삽입에의 공포에 기반한다.
더 이상 자랄 수 없는, 구멍을 노출한 말단은 자위를 통해 다시 자라고, 폐쇄한다.

오늘 밤도 손톱을 깎는다.
말단은 자라야 한다. 자라서 소비되어야 한다.
손톱을 깎는다?
잠깐, 손톱은 왜 자라서 다시 고통인가?
왜 자라서 나를 찌르는가?

나는 손으로 밭을 갈지 않는다.
나는 손으로 짐승을 잡지 않는다.

2.
네가 넘쳐서 나를 적시기에
오늘 밤도 너를 비워 낸다.

너는 나의 말단에서 자라야 한다.
자라서 소비되어야 한다.
너는 왜 자라서 다시 고통인가?
왜 자라서 나를 찌르는가?

넘쳐 흐르는 너를 원한 적 없다.
애초에 나를 물들일 너를 허락하지 않았다.
너는 적당히 자라 나의 말단에서 닳아 없어지면 족했다.
그 만큼씩만 하루 하루 소비되면 족했다.

나는 손으로 밭을 갈지 않는다.
나는 손으로 짐승을 잡지 않는다.

오늘 밤도 손톱을 깎는다.
그리고 오늘 밤은 깎은 손톱을
찬 바람 부는 밤 가운데에 내어 놓는다.

이제는 내 손톱을 물어 가
내일부터는 내 노릇을 해 달라.
그 이빨이 어떻게 생겼든, 그 눈알이 어떻게 빛나든
나는 관심이 없다.


_2001년 8월





그래, 이건 내 연애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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