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용자 삽입 이미지

태평양 횡단 특급 - 듀나


듀나에 대해 아는 것이라고는 가끔 짤막한 영화 리뷰들을 써 낸다는 것과 듀나 게시판을 운영한다는 것 정도였다. 사실 그 혹은 그녀 혹은 그들(?)의 영화 리뷰들은 별로 특이하지도 않았고 듀나 게시판에 대한 이런 저런 이야기들도 진부해서 태평양 횡단 특급에 대해서도 별로 기대하지 않았다.
아니 그런데 몇 개의 단편은 정말 좋았다. '무궁동'의 어머니-딸-어머니-딸-어머니-딸...의 무한 반복 생식이라든가 '끈'의 윤회와 영겁회귀가 결합된 듯한 세계관, 그리고 마지막에 위치한 '미치광이 하늘'까지. sf 소설을 이렇게 제대로 써낼 줄은 정말 몰랐다;
인간이 처음 태어나서는 주체의 개념이 없다. 어머니는 아기가 태어나자 마자 젖을 물린다. 아기는 울고, 어머니는 좋아한다. 시간이 흐르고, 아기가 울면 어머니는 젖을 주거나 안아 주거나 재워 준다. 그러니까 아기는 곧 어머니의 욕망의 일부가 되고, 곧 어머니의 욕망을 욕망하게 된다. 그러나 이때 아버지가 개입한다. 인간이 인간 사회에 편입되기 위해서는 아버지의 금지와 아버지의 규율이 필요하게 되는 것이다. 아기는 아버지의 존재를, 어머니의 욕망이 아버지에게 향하고 있음을 인정하면서 자신이 어머니의 일부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 과정에서 아기는 자신의 근원적 욕망을 거세당하게 되고 그 후로 자신의 결여를 채워 줄 대체물을 찾아 헤매게 된다. 이 것이 바로 상징계 즉 인간 사회로 편입되는 과정이고 아기의 최초 모습인 '욕망 덩어리'는 거세되어 빗금친 주체$로 재탄생하게 된다. 정신 분열은 이 과정이 일어나지 않은 것이다. 그러니까 아버지 즉 억압을 부인하면서 최초 '욕망 덩어리'의 눈에 비친 세계 즉 실재계를 그대로 받아들여 버린 것이다. 라캉은 상징계의 쾌락 원리를 넘어선, 불가능성의 영역에 도달하는 것을 주이상스라고 말했는데 정신분열은 곧 주이상스의 영역을 맛보는 것이다. 듀나의 '미치광이 하늘'에서는 정신분열증에 걸린 루시 헌트라는 소녀가 등장한다. 이 소설에서 그녀는 자신이 꿈꾸는 혹은 바라보는 세계를 현실 세계에 투영, 재현, 실재화시키는 능력을 갖게 된다. 나비가 초록색으로 물들고 강엔 젖가슴이 흐르고 성이 거대한 용으로 변한다. 이 실재계는 순식간에 지구를 뒤덮고 모든 인간, 동물들까지 상징계의 사슬에서 해방된다. 드디어 순수한 욕망만이 가득찬 세계, 주이상스의 세계가 도래하게 된 것이다. 라캉에게서 주이상스는 죽음의 영역이다. 그것은 어떠한 생성도 기대할 수 없는, 상징계의 끈을 놓아 버린, 영원히 돌아올 수 없는 길, 레테의 강 너머인 것이다. 그런데 이야기는 약간 어이 없게 루시 헌트가 실재계 속에서 다시 상징계를 구상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며 끝난다. 그럼 주이상스의 끝은 상징계로의 욕망인가? 주이상스에 끝이라는 것이 있나? 금지 없이는 주이상스도 존재하지 않는 것인가?
아.. 아직 개념을 제대로 잡지 못한 라캉으로 나름의 해석을 해보려고 하니 머리에 쥐가 난다. 어쨌든. 라캉을 읽으면서 도대체 실재계는 어떤 모습일까 라는 의문을 해소하기 힘들었는데 '미치광이 하늘'을 읽으니 이런 것이 아닐까 싶다. 듀나가 라캉을 고려하고 쓴 건지는 알 수가 없지만.
재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