쾌락 [에피쿠로스]

from 도서관 2007. 9. 10. 1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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쾌락 - 에피쿠로스


에피쿠로스 하면 쾌락주의, 아타락시아, 마르크스가 차용한 클리나멘 이론 정도가 떠오른다. 그런데 책을 보니 '쾌락'에 관한 이야기는 별로 없다. 원래는 엄청나게 써제꼈다는데 다 없어지고 단편들과 편지 세 통만 남은 모양이다. 그리하여 책의 대부분은 자연과학에 할애되고 있다.
당시 과학적 지식으로는 우주를 설명하는데 많은 애로가 따랐으리라(물론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싶다. 그런데 당시엔 이게 너무 어려우니까, 한가지 관점(예를 들면 천동설)으로 도저히 설명이 안되니까 그걸 신의 뜻으로 돌리고 허무주의로 빠지는 경향이 있었나 보다. 그래서 에피쿠로스는 굳이 한가지 이론에 얽매이기 보다는 여러 가지 이론을 필요한대로 갖다 쓰는 전략을 택했다(기본적으론 데모크리토스의 원자론을 변형시킨). 한가지 관점, 즉 신의 존재(를 부정하진 않는다. 다만 신은 그 자체로 행복하고 충만한 존재일 뿐이어서 천체의 운행 같은 귀찮고 까다로운 문제에는 개입하지 않는다는 것이다)를 우주의 운행에 끌어들이게 되면 말그대로 허무해지고, 쾌락에 반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일례로 달에 대해서도 스스로 빛을 낸다는 관점과, 태양의 빛을 반사한다는 관점 두 가지를 필요에 따라 선택해서 쓰고 있는 것이다. 그의 관심사는 오로지 쾌락(고통의 제거)이었다. 읽다 보면 참 흥미진진하다. 마치 거짓말이 거짓말을 낳고 그것이 또 거짓말을 낳고의 식이다. 의문이 제기될 때마다 그때 그때 견강부회식으로 이런 저런 말들을 지어 내는걸 보면 귀엽기도 하고. 하긴 그 시절에 그런 식이 아니었던게 있었겠냐만.
어쩌면 우리가 상대성 이론과 양자 역학을 한데 묶어 사고할 수 없는 것도 우주적인 관점에서 보면 우스운 일일지도 모른다. 니들은 '원래' 알 수가 없어 정도? 그러니까 에피쿠로스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그거 알려고 애쓰는게 도대체 니 행복과 무슨 상관이냐고. 상대성 이론이 필요할 땐 상대성 이론으로, 양자 역학이 필요할 땐 양자 역학으로 설명하면 되는거 아니냐. 한심허다~."
이런 이야기를 하려고 한게 아닌데 책에 자연과학 부분이 워낙 많아서. 원래 하고 싶었던 이야기로 들어가자면, 나는 확실히 플라톤 칸트 헤겔류(입문서에서 접한 정도가 고작이지만)보다는 이쪽이 끌린다는 거다. 이데아 따위는 집어 치우라는, 카르페디엠스럽고 아모르파티스러운 이야기들이 좋다.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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