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분다

from 소요유 2020. 11. 7. 09:53

출근 길에 라디오에서 이소라의 '바람이 분다'가 흘러 나왔다.
아주 오래 전에 어딘가에다가 "실연한 당일에는 '바람이 분다'를 듣고, 다음날에는 이상은의 '삶의 여행'을 들으면 좋은 이별이 될 것 같다"고 썼던 것 같은데. 싸이월드에다 쓴 건지, 이 블로그에 쓴 건지 모르겠다.
싸이월드에 쓴 건 다 날아갔다. 20대에 찍었던 사진, 쓴 글, 좋아서 스크랩했던 것들은 다 사라졌다. 2003년 여름 3주간 다녀왔던 유럽 여행 사진들은 따로 싸이월드의 클럽에 모아 놨었는데 그것도 모두 사라졌다.
이건 내꺼다, 이건 내가 다 알지, 이건 영원히 남아 있겠지 했던 것들로부터 배신 당하는 일. 처음 겪었을 때는 온 세상이 무너져내리는 기분이었는데, 그래도 겪고 또 겪다 보니 어느 정도는 무뎌지고 있다.
오늘은 개원 때부터 함께 했던 한의원 실장님이 마지막 근무를 하는 날이다. 남편의 사업을 도와야 해서 사직서를 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지만 그래도 마음이 많이 쓸쓸하다. 지금까지 많은 직원들이 입사했다가 퇴사를 했었는데, 다들 퇴사 후에는 결국 남이 되었다. 그래서 하루에 10시간을 함께 하는 직원의 퇴사는 어쩌면 연애의 종말보다도 더 쓸쓸하고 차가운 느낌을 갖게 하는지 모르겠다.

<<세상은 어제와 같고 시간은 흐르고 있고
나만 혼자 이렇게 달라져 있다>>

'바람이 분다'가 세상에 나온지도 10년이 넘었다. 그 시절 나와 정서를 공유하던 사람들은 각자 그때와 다른 삶을 살고 있겠지. 어떤 사람은 내 마음 속에서 죽었거나, 아니면 마음 속에서 나를 죽였을 수도 있을 것이고, 또 어떤 사람은 실제로 죽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렇게 본다면 십수 년이 지나서 '나만 혼자 이렇게 달라져 있다'기 보다는 '나만 혼자 이렇게 살아있다'고도 생각이 된다. 운전 중에 그런 생각을 하며 주변을 돌아 보았다. 단풍이 예쁘게 들어 있었다. 다들 죽어버린 이 세상에 그래도 나는 아직 살아서 이렇게 아름다운 것들을 마주하고 있는 것이다.

에이. 환자 봐야겠다. 이어서 쓰든지 말든지..
그래도 이 블로그는 계속 남아 있어서 다행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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