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우승은 하지 못했다.

아쉬운 순간들이 많았지만, 기적적인 순간들이 그보다 더 많았다.

그래서 너무 아쉬워하지는 않기로 한다.

 

내가 페빠질을 해 오면서 2009년 윔블던(상대는 로딕, 우승)과 2009년 US(상대는 델포트로, 준우승)를 끝으로 페더러가 자력 우승을 할 거라 기대한 적이 없었는데, 이번엔 달랐다.

2012년 윔블던(상대는 머레이, 우승)은 물론이거니와, 2010년 호주(상대는 머레이, 우승)에서마저도 자력 우승은 힘들다고 봤었거든.

항상 대회 당일에 갑자기 페더러 컨디션이 최고조에 이르고, 상대는 삽질을 좀 해주길 속으로 바랐었다.

 

이번엔.. 8강에서 컨디션이 정말 좋아 보였던 바브링카(2014 호주 오픈 winner)를 가볍게 제압하길래 그 순간에 우승 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반대 드로에서 조코비치가 결승에 올라올 가능성이 높았지만 이번 대회의 컨디션이라면 가볍게 이길 것 같았다.

 

그리고 내가 바라던 모습대로 페더러는 결승전을 치렀다.

세트 스코어 1:2에 4세트에서도 브레이크를 당해 게임 스코어 2:5로 몰린 상황, 페더러는 더 이상 잃을 것이 없다는 듯이 마구잡이로 공을 후려치기 시작했다. 잘 치지 않던 백핸드 다운더라인을 때려넣고, 약한 세컨 서브를 넣고도 과감하게 네트로 대쉬해 발리로 포인트를 따냈다.

마치 "내가 이 코트 결승전에 8번 올라 7번 우승했다. 이제 9번째다. 여긴 내 코트다. 내가 우승하겠다." 라고 부르짖는 듯 했다.

그리고 경기 흐름은 마법처럼 바뀌었다.

결국 내리 5 게임을 따내면서 게임스코어 7:5, 세트 스코어 2:2로 균형을 맞춘 순간, 윔블던의 100년이 넘은 잔디의 정령들이 페더러의 주위를 감싸고 있는 듯한 아우라가 느껴졌다. 아마 코트 안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그걸 느꼈을 것이다.

 

하지만 결국 조코비치가 더 강했다.

5세트 초반까지도 페더러의 분위기가 좋았다. 그리고 게임 스코어 4:4에서 페더러는 어프로치샷과 함께 상대를 윽박지르려는 듯, 네트에 아주 가깝게 붙었다.

보통의 상대였다면 심리적으로 압도당해 어정쩡한 패싱샷을 시도하다가 페더러의 발리에 당했을 것이고, 그대로 게임을 헌납하며 페더러에게 서빙포더매치를 허용했을 것이다.

그런데 조코비치는 그 상황에서 페더러가 네트에 너무 붙었다는 사실을 간파하고 로브를 올렸다.

페더러는 뒤로 물러서며 스매싱을 날렸지만 공은 네트에 걸렸고, 분위기는 급속히 냉각되었다.

그 후로 조코비치는 더 힘을 내며 베이스라인에 거의 붙는 샷들을 강하게 쳐냈고, 결국 페더러는 4:6으로 5세트를 헌납했다.

그 엄청난 압박감 속에서 결국 스스로 길을 찾아낸 조코비치에게 경의를 표하고 싶은 경기였다.

 

그리고 페더러.

81년생인 그가 뛰는 모습을 언젠가부터 안쓰럽게 보기 시작했다.

나달만 만나면 언제나 지고, 머레이와 조코비치를 만나도 전성기 때처럼 압도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면서 그만 은퇴를 했으면 좋겠다고도 생각했다.

하지만 이번 결승전을 보고 나니 앞으로도 계속, 페더러만 행복하다면 투어에 남아 있었으면 좋겠다.

4세트에서의 그 감동적이고 전율이 이는 플레이들을, 페더러가 없다면 볼 수 없을테니 말이다.

가을방학의 노래 가사처럼, 훗날 돌아봤을 때 '너같은 사람은 너밖에 없었'을 것이다.

 

어줍잖게 경기 분석을 하고 말았는데, 이번 윔블던 기간에 사진이 너무 예쁘게 나와서 사실 그거 올리려고 시작한 글이다. ㅋㅋㅋ

클릭하면 커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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