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으로 살기'의 어려움을 다룬 책이다.

쓰쿠루는 항상 사람들을 떠나 보낸다.

고등학교 시절의 색채 풍부한 친구들, 대학 시절의 하이다, 그리고 스쳐 지나간 여인들.

 

자연엔 부조리라는 개념이 없다.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부조리는 '의미'를 찾으려는 작업에서부터 비롯된다.

풀잎은 의미 없이 벌레에게 뜯기고, 개미는 의미 없이 발에 밟혀 죽는다.

누우는 불어난 강을 건너다가 익사하기도 하고 악어에게 잡히기도 하고 맞은편 뭍에 오르다 다리가 부러지기도 한다.

어미 갈매기는 새끼가 다른 갈매기의 부리에 의해 찢기는 장면을 목격하기도 한다.

자연엔 '의미화'라는 것이 없기 때문에, 다시 시간은 흐른다.

하지만 인간은 날것 그대로의 현실을 모두 감내하지 못한다.

그에게는 의미와 스토리, 서사, 변명이 필요하다.

그래야 다시 시간을 흐르게 할 수 있다.

 

사람들은 쓰쿠루를 떠나간다. 쓰쿠루는 그 이유를 알 수 없다. 다만 꿈을 꿀 뿐이다.

그리고 떠나간 사람들은 거짓말을 한다.

그런데 사실은 쓰쿠루가 꾸는 꿈이 현실이고 떠나간 사람들의 말이 진실일 수도 있다.

이 둘의 양립불가능성이 그들을 이별로 내몬다.

 

자연이라면 그들은 여전히 같은 시공간에 있을 것이다.

애초에 의미가 없으니까.

 

가끔 보수 논객과 진보 논객의 토론을 볼 때 답답함을 느낀다.

분명히 팩트는 하나일텐데, 더 파고들면 어느 한쪽을 절멸시킬 수 있을텐데,

그들은 적당한 선에서 합의를 본다.

서로는 알고 있다. 날것의 사실은 감내하기 힘들다는 것을.

그래서 적당히 꿈을 꾸고, 거짓말을 한다.

서사를 만들고, 변명을 한다.

살아야 하니까.

 

내가 가진 상처들에 대해 생각해 본다.

그 상처들의 연원을 찾아 순례를 떠나 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결국 날것 그대로의 사실, 구멍, 틈을 발견해낼 수는 없을 것이다.

이미 거기엔 수많은 사람들의 반흔이 덕지덕지 붙어 있을테니까.

그 틈엔 영원히 가 닿을 수 없을 것이다.

나는 실패했다.

그리고 분명히 다시 실패할 것이다.

 

쓰쿠루는 사라와 같은 서사 속에 놓일 수 있을까.

이렇게 또 의미를 찾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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