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으로 중요한 것은, 적절한 시기에 적절한 방식으로 추진되기만 한다면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소득 재분배'가 경제 성장까지 촉진한다고 믿을 만한 근거가 많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오늘날과 같은 불황기에 경기를 활성화시키는 최선의 방법은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소득 재분배'이다. 소득이 적을수록 가용 소득에서 더 많은 몫을 지출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저소득 가계에 복지 지출을 늘리는 방식으로 10억 달러를 추가 지원할 때 얻을 수 있는 경기 활성화 효과는 같은 액수의 돈을 부자들에게 감세해 줄 때보다 더 크다. 더욱이 임금이 최저 생계 수준 혹은 그 이하가 아니라면, 노동자들은 추가 소득을 자신의 교육이나 건강에 더 투자할 수 있고, 이에 따라 노동 생산성과 경제 성장이 촉진될 수 있다. 더욱이 소득 분배가 보다 평등해지면 파업이나 범죄가 줄어들면서 '사회적 평화'가 이루어지고 이는 다시 투자를 촉진한다. 사회적 평화가 이루어지면 재화를 생산하고 부를 생성하는 과정이 방해받을 위험이 줄어든다. 상당수의 학자들은 소득 불평등이 낮으면서 빠른 경제 성장이 이루어졌던 '자본주의의 황금기'는 이 같은 메커니즘이 작동한 덕분에 가능했다고 믿는다.

 

...이렇게 세상이 복잡하고, 세상을 이해하는 우리의 능력도 그렇게 제한되어 있다면 도대체 무엇을 할 수 있다는 말인가? 허버트 사이먼의 대답은 우리가 해결해야 하는 문제의범위와 복잡성을 줄이기 위해 선택의 자유를 의도적으로 제한하자는 것이다.

이 말은 난해하게 들릴지 모르나 곰곰이 생각해 보면 바로 우리가 늘 하는 일이다. 우리 중 대다수는 너무 많은 의사 결정을 너무 자주 해야 할 필요가 없도록, 즉 '선택의 자유'를 제한하기 위해 우리 삶에 '규칙적 일과'를 도입한다. 물론 몸 상태나 처리해야 할 일에 따라 수면 시간과 아침 식사 메뉴가 달라져야 하지만, 적어도 주중에는 대부분 같은 시간에 잠자리에 들고, 같은 시간에 일어나며, 아침 식사로 비슷한 메뉴를 먹지 않는가...

...그래서 사람들은 일상생활이나 체스 게임에서 '일상적으로 움직이는 행동 패턴'을 만들어 내고 기업은 '일정한 생산 공정'을 만들어 내는데, 이는 선택의 폭과 고려해야할 경우 수를 단순화하기 위해서이다. 기업들은 일정한 의사 결정 체계, 공식 규정, 관례들을 만들어서 검토하지 않은 경영 대안이 더 높은 이윤을 낼 확률이 있음에도 의도적으로 대안의 수를 줄인다. 그렇지 않으면 자칫 정보의 바다에 빠져 아무런 결정도 내리지 못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사회에서도 사람들이 끊임없이 새로운 선택을 하지 않아도 되도록 선택의 자유를 제한하는 비공식적 규칙들이 만들어진다. 예를 들어 줄을 서는 관습이 바로 그것이다. 만약 이런 관습이 없다면 붐비는 버스 정류장에서 시민들은 버스를 놓치지 않기 위해 지금 자기들이 서 있는 위치가 버스를 먼저 타는 데 가장 유리한지 가늠하고 또 가늠해야 할 것이다.

 

기회의 균등은 공정한 사회를 이룩하기 위한 출발점이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물론 훌륭한 성과를 올린 사람은 충분한 보상을 받아야 한다. 그러나 문제는 모든 사람이 같은 조건에서 경쟁을 했는가 하는 것이다. 어떤 아이가 배가 고파서 수업 시간에 제대로 집중하지 못한다면 선천적으로 능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성적이 나쁘다고 말할 수 없다. 공정한 경쟁이 되려면 그 아이도 다른 아이들처럼 배불리 먹을 수 있어야 한다. 집에서는 생계비 지원을 받아 식사를 할 수 있도록 하고, 학교에서는 무료 급식을 통해 밥을 굶지 않도록 보살펴야 한다. 기회의 균등이 진정한 의미를 가지려면 일정 수준 이상의 결과의 균등이 보장되어야 한다. 말하자면 부모가 아이를 굶기지 않을 정도로는 돈을 벌 수 있어야(결과의 균등) 그 아이도 같은 조건에서 다른 아이들과 경쟁을 할 수 있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