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좁은 문>
......이곳의 정원은 변한 것이 없어. 그러나 집은 텅 비어 있는 것만 같아! 올해에는 오지 말도록 너에게 부탁한 이유를 너는 잘 이해하고 있겠지? 그 편이 나은 것처럼 느껴진다. 나는 매일같이 그 생각을 혼자 되뇌곤 한다. 너를 만나지 못하고 이처럼 오랫동안 떨어져 있는 것이 나에게는 몹시 괴로운 일이니까...... 때때로, 나는 어쩔 수 없이 너를 찾는다. 책 읽던 것을 멈추고, 갑자기 고개를 돌리면...... 네가 거기 있는 것만 같아!

친애하는 제롬.
너의 편지를 읽으면서 나는 기쁨으로 녹아드는 것 같다. 오르비에토에서 보낸 네 편지에 답하려 하고 있는데, 페루자와 아시시에서 네가 보낸 편지가 동시에 도착했어. 나의 마음은 여행자가 되어 있다. 내 몸만이 여기 있는 시늉을 하고 있는 거지. 실상은, 나는 너와 더불어 움브리아의 하얀 길 위에 있는 거야. 나는 너와 더불어 아침이면 떠나고, 전혀 새로운 눈으로 여명을 바라보곤 한단다...... 코르토나의 테라스에서 너는 정말로 나를 불렀었니? 나는 네가 부르는 소리를 들었어...... 아시시 너머의 산에서는 지독히도 목이 말랐었지! 하지만 프란체스코회의 수도사가 내밀던 한 잔의 물은 얼마나 맛이 좋아 보이던지! 오오, 제롬! 나는 너를 통해 모든 것을 바라본다. 성프란체스코에 대해 내게 써보내 준 것이 얼마나 좋았는지 몰라! 그래, 정말이지 찾아야 할 것은 마음의 해탈이 아니고 '감격'이야. 마음의 해탈이란 가증스런 오만이 없이는 이뤄지지 않거든. 자신의 야망은 반항이 아니고 봉사하는 데 놓여야 하겠지......

......할 말이 태산 같아.나는 그칠 줄 모르는 얘기에 갈증이 나 있는 거야! 때때로 나는 주고받을 무한한 부에 대한 숨 막힐 듯한 감각만을 지닌 채-오늘 저녁에도 나는 꿈꾸는 듯이 이 편지를 쓰고 있다- 말이나 분명한 생각이 떠오르질 않아.
우리가 어떻게 그렇게 여러 달 동안이나 침묵하고 지낼 수 있었을까? 아마도 우리가 동면에 빠져 있었던 모양이지. 오오! 그 무서운 침묵의 겨울은 영원히 끝나 버렸기를! 너를 되찾은 이후부터는, 생활도 생각도 우리의 영혼도 모두가 나에게는 무진장으로 아름답고, 사랑스럽고, 풍요해 보인다.

그래! 제롬, 오전 내내 나도 모르게 나는 너를 찾았다. 네가 떠났다고 믿을 수가 없었어. 우리의 약속을 지킨 네가 원망스러웠다.그것은 장난이겠지 하고 생각하기도 했다. 네 모습이 나타나는 것을 보려고 덤불 뒤마다 가보기도 했다. 그러나 아니었다! 네가 떠난 것은 사실이었다. 고맙다.

오, 주여! 말씀하옵소서, 어떤 영혼이 그의 영혼 이상으로 당신께 합당한 적이 있었나이까? 그는 저를 사랑하는 것보다 더 훌륭한 일을 위해 태어나지 않았나이까? 그가 저에게 발걸음을 멈춘다면, 그로 인해 제가 그를 더 사랑하겠나이까? 영웅적일 수 있는 모든 것이 행복 속에서 얼마나 위축되어 버리는 것이온지요!......

그는 내일 떠난다......
정다운 제롬, 나는 항상 무한한 애정으로 너를 사랑한다. 그러나 이제부터는 너에게 결코 그런말을 할 수 없을 것이다. 내가 자신의 눈과 입술과 마음에 부과하는 구속은 너무나 힘겨운 것이어서, 너와 헤어지는 것이 나에게는 해방이요, 씁쓸한 만족이기도 하다.


<전원 교향곡>
"아니, 제 말을 들어주세요. 저는 그런 행복은 원하지 않아요. 저를 이해해 주세요...... 저는 꼭 행복해지고 싶은 게 아녜요. 그보다 저는 알고 싶어요. 많은 것들, 분명히 슬픈 많은 것들을 제가 볼 수 없다고 해서, 제가 모르도록 내버려두실 권리는 목사님에게 없을 거예요. 저는 지난 겨울 몇 달 동안 오래 오래 생각해 보았어요. 저는 두려워요, 목사님. 이 세상 전체가 목사님이 저에게 믿게 해주신 것만큼 그렇게 아름다운 것이 아니지 않은가, 심지어 아주 다른 것은 아닌가 하고 말이에요."

"당신이 저에게 시력을 되찾아 주었을 때, 제가 처음 본 세상은 제가 꿈꾸었던 것보다 더 아름다웠어요.그래요, 정말로 저는 햇빛이 그렇게 밝고, 대기가 그렇게 빛나고, 하늘이 그렇게 넓은지 상상하지 못했거든요. 그러나 저는 또 사람들 얼굴이 그렇게 수심에 차 있는 것도 상상하지 못했어요. 그리고 제가 목사님 댁에 들어갔을 때, 맨 처음 제 눈에 띈 게 무엇인지 아세요...... 아아! 아무래도 그 말을 해야겠어요. 제가 처음에 본 것, 그것은 우리의 과오, 우리의 죄였어요. 아니, '만일 소경이었던들, 죄없으리라'라는 말씀을 가지고 항변하지 마세요. 그러나 지금은 제 눈이 보이거든요...... 일어나세요, 목사님. 여기, 제 곁에 앉으세요. 막지 말고 제 말을 들어 주세요. 제가 병원에서 지낼 때, 저는 성서 구절들을 읽었어요, 아니 누가 읽어 주었어요, 목사님이 읽어 준 적이 없어서 제가 아직 알지 못하던 구절들이었지요. 사도 바울의 한 절은 하루 종일 반복해서 지금도 기억이 나요. '전에 율법을 깨닫지 못했을 때에는 내가 살았더니 계명이 이르매 죄는 살아나고 나는 죽었도다.'"(로마 7:9)
그녀는 극도의 흥분 상태에서 아주 높은 목소리로 얘기했고, 더구나 마지막 구절은 거의 고함치다시피 외쳤기 때문에, 사람들이 밖에서 들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나는 몹시 난처했다. 뒤이어 그녀는 다시 눈을 감더니, 혼잣말을 중얼거리듯 이 마지막 구절을 되풀이했다.
"죄는 살아나고- 나는 죽었도다."


아주 오래전 중학교에 입학할 때 어머니께 받았던 몇 권의 책 중 하나.
참 답답하고 슬픈 이야기다.
처음 읽었을 때의 나이 만큼을 더 먹고 읽으니, 참 더 답답하고 더 슬프구나.
앙드레 지드가 너무 좋다.
참 즐거운 하루였다. 초딩 일기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