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다시 일어났다.
바닥을 짚은 어깨가 떨어져 나간다.
무릎이 끊어지고 척추가 바스라진다.
뇌수가 녹아내려 두개골 속에서 출렁인다.
파도가 들이친다. 밀물이다.
마침내 영겁의 조수가 밀고 빠지어 달도 그만 지쳤을 때
나는 다시 일어났다. 그리고 산이 거기 있었다.
오로지 나와 산이 거기 있기에 걷는다.
가는 길에 십자가가 보여 등에 지고 다시 걷는다.
사방에서 채찍이 날아들어 새로 돋은 살점들을 발라낸다.
산 정상에 십자가가 곧추서고 그에 못박힌 나는, 웃는다.
웃음이 균열을 만들고 산이 무너져내린다.
채 흩어지지 못한 웃음소리가 골짜기마다 메아리친다.
나는 다시 일어났다. 그리고 산이 거기 있었다.
오로지 나와 산이 거기 있기에 걷는다.
가는 길에 무쇠 삿갓이 보여 머리에 쓰고 다시 걷는다.
태양이 얼기설기 틈새 사이로 송곳이 되어 파고든다.
산 정상에 바람이 일어 삿갓을 날리고 햇살이 나를 찢으니
무쇠 삿갓이 깃털에 다름없고 한 길 육신이 티끌에 매한가지로다.
나는 다시 일어났다. 그리고 산이 거기 있었다.
오로지 나와 산이 거기 있기에 걷는다.
가는 길에 죽은 아내가 보여 품에 안고 다시 걷는다.
산 정상에 조문 온 친구가 울지 않는 나를 나무라는데
그저 아내를 뜯어 먹은 대붕에 올라타 노래하고 춤출 뿐.
나는 다시 일어났다. 그리고 산이 거기 있었다.
오로지 나와 산이 거기 있기에 걷는다.
가는 길에 매맞는 말이 보여 뒤엉켜 다시 걷는다.
말이 나를 타고 내가 말을 몰아 드디어 정상에 올랐을 때
나는 말이 되어 울고 말은 내가 되어 외친다.
이것이 삶이었던가? 자아, 다시 한 번!
나는 다시 일어났다. 그리고 산이 거기 있었다.
시지프스와 예수와 김삿갓과 장자와 니체와 나의, 그리고 그대들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