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론 침묵과 서툰 태도는 욕망의 애처로운 증거로 여길 수 있다. 별로 마음이 끌리지 않는 사람은 유혹하기가 쉽기 때문에, 유혹에 서툰 사람이 오히려 진정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라고 관대하게 봐줄 수도 있다. 정확한 말을 찾지 못한다는 것은 역설적으로 정확한 말을 의도하고 있다는 증거가 되는 경우가 많다.

보답받지 못하는 사랑에 빠져 어떤 사람을 보면서 그 사람과 함께 천국에서 누리는 기쁨을 상상할 때, 우리는 한 가지 중요한 위험을 잊기 쉽다. 정작 상대가 나를 사랑해줄 경우에 그 사람의 매력이 순식간에 빛이 바랠 수가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타락한 우리 자신으로부터 벗어나 이상적인 사람과 함께 있고 싶어서 사랑을 한다. 그런데 그런 존재가 어느 날 마음을 바꾸어 나를 사랑한다면 어떻게 될까? 나는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그 사람이 나 같은 사람을 사랑할 만하다고 인정한다는 것은 그 사람의 취향에 뭔가 문제가 있다는 것인데, 그런 문제가 있는 사람이 어떻게 내가 바라던 대로 멋진 사람일 수 있을까? 사랑을 하기 위해서는 상대가 어떤 면에서 나보다 낫다고 믿어야만 한다면, 상대가 나의 사랑에 보답을 할 때 잔인한 역설이 나타나게 되는 것이 아닐까? 우리는 묻게 된다. "그/그녀가 정말로 그렇게 멋진 사람이라면, 어떻게 나 같은 사람을 사랑할 수 있을까?"

우리가 아는 또다른 마르크스(Grucho Marx, 미국의 희극인)는 자신과 같은 사람을 회원으로 받아들여줄 클럽에는 가입할 생각이 없다고 농담을 했다. 이 농담은 클럽 회원권과 마찬가지로 사랑에도 적용되는 진리이다. 우리는 다음과 같은 터무니없는 모순 때문에 마르크스주의자의 입장에 대해서 웃음을 터뜨리게 된다. 클럽에 가입하기를 소망하면서 그것이 실현되지마자 그 소망을 잃어버리는 것이 어떻게 가능한가? 클로이가 나를 사랑하기를 바랐으면서, 막상 그녀가 나를 사랑하자 그녀에게 화를 내는 것은 어떻게 된 일인가?

우리는 다시 사랑과 자유주의 사이의 선택의 문제로 돌아온 것 같다. 신문 판매소 주인의 샌들은 내가 그 사람에게 관심을 가지지 않기 때문에 짜증이 나지 않는다. 나는 그에게서 신문과 우유를 얻고 싶을 뿐이지 그 이상은 바라지 않는다. 나는 그에게 내영혼을 드러내고 싶지도, 그의 어깨에 기대어 울고 싶지도 않다. 따라서 그의 신발은 나에게 거치적거리지 않는다. 그러나 내가 폴 씨를 사랑하게 된다면, 똑같은 평정한 마음으로 그의 샌들을 계속 마주볼 수 있을까? 헛기침을 한 다음에 다른 것을 신어보라고 권하는 [사랑하는 마음에서] 시점이 오지 않을까?

나와 클로이의 관계가 공포정치 수준에 이르지 않았던 것은 아마 그녀와 내가 사랑과 자유주의 사이의 선택에서 다른 관계에서는 거의 찾아보기 힘든, 하물며 사랑의 정치인들(레닌, 폴 포트, 로베스피에르)에게서는 더욱 더 찾아보기 어려운 재료를 넣어서 반죽할 수 있었기 때문인 것 같다. 국가든 남녀든 그 재료만 있다면 (그것이 다들 나누어 쓸 만큼 충분한지는 모르겠지만) 불관용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그 재료는 다름 아닌 유머 감각이다.

통제할 수 있는 일들을 통하여 얻은 행복, 이성적으로 노력해서 어떤 일들을 성취한 뒤에 찾아오는 행복은 받아들이기 쉽다. 그러나 내가 클로이와 함께 얻은 행복은 깊은 철학적 숙고 뒤에 나온 것도 아니고 개인적 성취의 결과도 아니었다. 단지 신의 기적적 개입에 의하여 세상에서 나에게 가장 귀중한 사람을 찾아냈기 때문에 생긴 결과였다. 그런 행복은 위험했다. 자족적인 지속성이 결여되어 있기 때문이다. 내가 몇 달 동안 꾸준히 연구한 끝에 원자생물학계를 뒤흔들 과학 공식을 발견했다면, 나는 그 발견에 뒤따르는 행복을 받아들이는 데에 전혀 가책을 느끼지 않았을 것이다. 클로이가 대표하는 행복을 받아들이는 어려움은 거기에 이르는 인과 과정이 없다는 것, 따라서 내 삶에서 그 행복을 빚어낸 요소를 통제할 수 없다는 것에서 온다. 클로이와 나의 관계는 마치 신들이 만들어놓은 것처럼 보이며, 따라서 신의 보복에 대한 원시적인 두려움이 따르는 것이다.

나는 이 악의 이름이 무엇인지 찾아헤매다가, 어느 날 밤 정신분석 용어 사전의 반복강박증 항목에서 그 답을 찾았다.
...무의식에서 비롯된 통제 불가능한 작용. 이 작용의 결과 환자는 일부러 자신을 괴로운 상황에 가져다놓고 과거의 경험을 되풀이한다. 그러나 환자 자신은 이 원형을 기억하지 못한다. 오히려 환자는 그 상황이 현재 이 순간에 의해서 완전히 규정된다는 인상을 강하게 받는다.



우왕 완전 재밌다!
스물다섯에 이런 책을 쓰려면 도대체...
암튼 이제 사랑을 말함에 있어서 '화성남 금성녀'의 시대는 간 듯. 알랭 드 보통과 진화심리학의 시대? 흐흐
뭘 좀 써보고 싶지만 아직 정리도 안 됐고, 출장도 나가야 하니 다음 기회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