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립자 [미셸 우엘벡]

from 도서관 2008. 1. 22. 0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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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셸 우엘벡 - 소립자



읽은지 일주일도 더 됐는데 이제야 정리하네. 이거 읽고 좀 많이 우울했었다.

"히피로 사는 것, 멋지지. 근데 왜 나는 안끼워줘? 쳇. 니들도 늙으면 초라해지지롱. 메롱."

대충 요런 주제. 뭐랄까, 착안은 나하고 비슷하지만 결론은 완전 정반대다. 나는 섹스가 평등할 수 없기 때문에 모두가 평등하고 모두가 행복한 유토피아 같은 것을 믿지 않는데 우엘벡은 그 반대인가 보다. 진짜 웃기지 않나? 내가 왜 못생긴 너하고 자야 되는데? 김태희가 왜 나하고 자야 되는데? 그걸 못받아들이는건 그냥 투정이다. 그래서 해결책이 뭔데. 똑같이 생기고 늙어 죽지 않는 신인류를 탄생시키자고? 남은 인간은 스스로의 한계 때문에 알아서 멸종할거라고? 모르겠다. 내가 과학 쪽으로 덜떨어져서 그런지는 모르겠는데, 나는 유성생식을 찬양하는 쪽에 가까운 반면 우엘벡은 유성생식 때문에 인간이 요따위라고 주장한다. 그래, 맞다. 나도 인간이 유성생식을 하기 때문에 죽는다고 생각은 하는데, 그렇다고 그게 잘못됐다고는 생각 안한다. 우엘벡은 그냥 사람들이 다 다르게 생긴게 못마땅한거다. 인간이 다 다르게 생긴 바람에 갈등이 발생하고, 폭력이 발생하고, 사회가 혼란스럽다는 거다. 완전 복제. 말은 좋지. 내 장담하건대, 우엘벡이 만든 신인류는 구석에서 근근이 삶을 유지해 나가고 있을 구인류를 목격하면서 얼마 지나지 않아 다 자살할 것이다. 아니면 구인류에게 정복당하거나. 전에 '베로니카의 이중생활 포스트'에서도 말했지만 나는 인간이 차이로 말미암아 생존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베로니크를 목격한 베로니카는 죽을 수밖에 없었다고 생각한다. 우엘벡이 창조한 신인류의 삶이 도대체 짚신벌레나 아메바의 삶과 뭐가 다른가. 정말 즐이다. 소설 막바지에서 신인류 프로젝트가 발표됐을 때 크리스찬들이 반대했다고 하는데, 신인류 프로젝트야말로 크리스찬들이 열렬히 환영할만한 것이 아닌가? 인간은 인간대로 죽어서 천국에 가고, 남은 신인류는 그네들대로 지구에 남아 천국을 건설한다는데. 똑같잖아. 모든 사람이 행복하고 모든 사람이 서로에게 상처주지 않고 모든 사람이 서로 사랑하는 사회. 그런걸 바라면, 그런게 이뤄지지 않는 세상이 짜증난다면, 그냥 죽어라. 그게 최선이다. 우엘벡의 결론이 뭔가. 그냥 다 죽자는거 아닌가. 근데 니 혼자 죽으라고;

모든 남자는 김태희와 자고 싶어 한다. 그러나 김태희는 한 명이다.
이걸 못견디겠다고? 그러면 죽으라고 좀.
인간은 날마다 식물을 죽이고 동물을 죽인다. 그래야 살 수 있기 때문이다. 식물을 죽이기 싫다면, 동물을 죽이기 싫다면, 그냥 자신이 죽으면 된다. 뭘 거창하게 신인류를 창조해낼 필요도 없다. 그냥 자살하면 된다.
천국, 정말 좋은 곳이다. 난 궁금한게 있었는데. 남자1과 남자2가 동시에 여자1을 사랑하는데 남자1은 차였다. 남자1은 여자1이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것이 가장 큰 불행이었다. 그에게 있어 가장 큰 행복은 여자1의 사랑을 받는 것이다. 그런데 이 세 명이 모두 천국에 갔다. 자, 천국은 행복으로 가득차 있다. 그러면 여자1은 누구의 사랑을 받아 줘야 하는가? 그래, 그 말이 나올 때가 되었다. 지상의 법과 천상의 법은 다르다. 인간은 천국에서 그런 자잘한 감정을 느끼지 않는다. 모든 인간은 하나님으로부터 동일하게 사랑받고 그것으로 인해 동등하게 행복하다. 풉. 천상의 법이 너무나도 고매하구나. 왕자와 공주는 그 후로 오래오래 행복했답니다. 여기서 느끼는 행복이 거기서 아무 것도 아니라면 여기서 느끼는 고통 또한 거기서 아무 것도 아닐 가능성이 크다. 그래서 나는 지옥의 불구덩이가 여기서 느끼는 불구덩이와 다를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천상의 행복이 고작 그런 것일 바에야 차라리 지옥을 선택하겠다는 것이다.

말이 많이 샜다. 물론 우엘벡의 결론이 신인류를 탄생시키자는 것은 아닐 것이다. 좀 더 타인을 사랑하자 정도? 인간을 개체로 보지 말고 벡터로 보자, 그러면 우리는 인간 인간을 좀 더 잘 이해할 수 있고, 갈등은 사라질 것이다 정도? 뭐 이게 자기가 생각해도 웃기니까 신인류 프로젝트가 나온거겠지만.
나도 사회가 좀 더 평등해지기를 바라고 좀 더 투명해지기를 바라고 좀 더 소수자를 배려해 주기를 바란다. 그러나 나는 결단코 모든 인간이 똑같은 모습으로 살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다. 나는 더 높은 인간을 보기를 원한다. 더 자유로운 인간을 보기를 원한다. 더 다른 인간, 더 특이한 인간을 원한다. 그러기 위해서 사회는 좀 더 평등해져야 하고 소수자에게 관대해져야 한다. 인간이기 때문에 그것으로 족한 사회를 원하지 않는다. 인간이기 때문에 인간을 넘어서려고 하는 사회를 원한다. 평범한 인간들, 약자들, 노예들이 돈과 권력을 쥐고 특이한 인간을, 강자를, 귀족을 억압하는 사회를 원하지 않는다. 같은 길을 걷고 있더라도 지향점이 다르다는 말이다. 나는 죽음을 향해 걷고 있는 것이 아니다. 내 앞에는 오로지 삶밖에 없다. 발밑에 비록 천길 크레바스가 놓여 있더라도 내 눈은 에베레스트 꼭대기를 향하고 있다.




p.s.> 대단한 소설인데 안좋은 말만 한 것 같다. 그만큼 내게 영향력이 컸다는 말이겠지. 이런 저런 생각을 많이 해보게 하는 좋은 소설. 강추강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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